Home > 작가소개 > 인터뷰
빡빡머리에 앞 머리카락 몇 개만 나풀거리던 '독고탁'. 역경에 처한 소년 주인공이 열악한 환경을 꿋꿋하게 극복해 나가는 내용의 독고탁은 1970, 1980년대 만화계에서 가히 독보적인 캐릭터였다. 독고탁이 그의 작품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1년.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하고 싶었던 주인공이 변장해서 얼굴을 바꿔 야구를 한다'는 내용의 '주근깨'라는 작품에서 독고탁이 탄생한다. 진짜 사람 이름처럼 친근한 느낌을 주는 독고탁이 구체적인 캐릭터를 갖고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비둘기 합창'을 통해서다. 1976~1978년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에 연재됐던 가족드라마인 '비둘기 합창'은 MBC가 국내 처음으로 국산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독고탁 캐릭터로 1980년대 말까지 30년 가까운 작가생활 동안 '한국만화의 정점'자리에 섰던 만화가 이상무(66) 화백을 지난 4월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전성기 시절 독고탁의 아빠라는 의미로 '탁이 아빠'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독고탁'에 얽힌 다양한 얘기와 50년 가까운 '만화 인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책읽기를 무척 좋아해서 책 속에 빠져드는 일이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공부 면에서는 별로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콜럼버스 초상이 나온 교과서 그림을 스케치했는데 선생님께서 잘 그렸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처음 듣다시피한 이 칭찬이 저를 그림에 빠져들게 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당시 가정 형편상 미술부 활동을 하며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지요. 물감이며 그림도구를 장만할 상황이 못돼서 오로지 연필로 공책 뒷부분을 그림으로 채워나가다 보니 노트 검사만 하면 꾸중을 듣기 일쑤였어요. 노트 뒤에는 온통 낙서(?)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으니까요. 이후 철이 들면서 자연스레 만화의 세계에 빠져들었지요."

독고탁을 빼놓고 선생님을 말할 수 없는데요.

"독고탁은 내 만화에 항상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었기에 독고탁을 빼놓고 내 만화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인 독고탁, 어린 독고탁, 바보 독고탁, 천재 독고탁…. 만화 내용에 따라 여러 성격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이야기 성격에 맞는 주인공을 그리면서도 늘 독고탁이란 인물로 그렸기에 다양한 독고탁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당시 숱한 기성 만화가 속에서 저 자신을, 제가 만든 주인공을 독자들에게 빨리 알리려는 고육지책이기도 했습니다."

독고탁이라는 이름이 독특한데요.

"데뷔 당시 기라성 같은 만화가들은 한 달에 열 편 이상씩을 문하생을 두고 그려낸 반면, 저는 혼자 한 달에 두 권을 그리도록 배당을 받았지요. 게다가 원고료가 박해 문하생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작업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한 번 본 독자들에게 주인공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당시 어린이들이 된발음을 좋아한다는 것에 착안했고, 두 자 성(姓)의 이름 중에 가장 강한 발음이 나오는 '독고' 성을 택하게 됐습니다. 탁이란 이름도 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붙이게 된 것입니다. 또 매권 책 표지 제목을 '독고탁의 ㅇㅇㅇ'라고 지었죠. 사람들로 하여금 '제목이 뭐 이래?'하면서도 한 번 더 시선을 주게 만든 겁니다. 이같은 '전략'으로 '독고탁'은 빠르게 독자들에게 알려지게 됐습니다. 일상적으로 모든 만화가들은 주인공을 그리게 되면 작가 자신의 이미지가 풍긴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유독 독고탁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면서 출판사에서는 한때 '탁이 아빠'로 통하기도 했었습니다."

독고탁은 평범하고 건조한 주인공이 아닌 반항심과 질투심을 지닌 말썽쟁이의 특징을 보여줬는데.

"당시 만화스토리의 패턴은 주인공은 늘 착하고 정의감이 강하고 올바른 인간형의 모델을 하고 있었죠. 그런 공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스토리상 늘 악한 역을 담당했던 조연급을 통해 스토리를 전개시켜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악동의 행동 뒷면에는 늘 고독과 후회와 세상에 대한 반항이 있었다는 형식을 택하다 보니 독고탁에게 말썽쟁이 같은 반항적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 겁니다."

이름과 외형, 성격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형성을 깬 독고탁에 대한 사람들의 첫 반응은.

"'전략'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독고탁을 등장시킨 후 제 만화인생은 굴절 없이 줄곧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당시 '신촌'과 '한국일보'라는 거대 출판사가 만화시장을 놓고 경쟁하면서 많은 신인 만화가를 급속히 배출해 내야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배경 속에서 신인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하지만 두 출판사의 경쟁이 끝나자 급조됐던 많은 신인작가가 필요없게 된 상황에서 오직 저만이 살아남게 된 것은 그만큼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야구 만화 '달려라 꼴찌' 등이 프로야구 출범 전부터 폭발적으로 인기를 누렸는데.

"어려서부터 야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만화가가 되어서 늘 야구, 축구 등 스포츠 만화를 많이 그리게 됐는데, 특히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1대 1 대결이 흥미있고 그 결과가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만화 소재로 삼기에 좋았습니다. 아울러 경기 뒤의 우정, 배신, 사랑 등 인간적 갈등을 많이 다뤘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야구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제 감정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감동을 안겨준 것 같습니다."

야구를 실제 하는 것도 좋아했나요.

"축구, 테니스도 좋아했지만 야구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과거 문화공보부가 주최한 야구대회가 열리면 영화배우, 가수, 만화가 등이 한 팀씩이 돼 동대문운동장에서 경기했었지요. 전 당연히 합숙훈련도 하며 선수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예전만큼의 흥미는 없어요. 같이 야구하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인지 경기 중 도루를 하면 도루를 막지 못하고 3루까지 허용하니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1970, 1980년대의 작품들이 극장·TV용 만화영화로 제작됐었는데.

"당시 한국의 만화영화 즉, 애니메이션 시장 상황은 일본 TV 애니메이션의 사잇그림을 채워주는 수작업(상품의 보세가공식)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주문이 없으면 쉬어야 하는 실정이었어요. 그 쉬는 인력으로 방학 때 극장용 만화영화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1980년대 초 '태양을 향해 던져라''다시 찾은 마운드''내 이름은 독고탁' 등의 작품이 극장용 만화영화로, '비둘기 합창'은 최초로 TV 만화영화로 제작됐지요."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알려진 모든 작품은 다 애착이 가지만 지난 2006년 단행본으로 펴낸 '감또깨이 입에 물고'란 작품에 특히 애착을 느낍니다. 제 유년시절의 회상을 가감 없이 논픽션 형태로 그린 작품이지요. 아쉬운 것은 애당초 계획했던 분량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부만 완성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점입니다. 나이가 드니 어린 시절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손을 못대고 있지만 후속편을 꼭 낼 생각입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독자들로부터 고아 출신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 독고탁을 줄거리상 고아로 다룬 내용이 많았던 탓이지요. 어린시절 학교 근처에 고아원이 있었고 친구 어머니가 고아를 돌보는 보모로 일하고 있어서 자주 그 고아원에 놀러 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아들과도 꽤 친하게 놀았고 그런 기억을 작품에 많이 담았습니다."

1990년대 이후 골프만화가로 활약하고 있는데, 골프와 인생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골프는 하나의 동반자를 만드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골프는 무엇보다 파트너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골프는 관중이 있어야 합니다. 또 심판도 있어야 합니다. 관중과 심판이 파트너인 것입니다. 잘 치면 '굿샷'을 외쳐줘야 힘이 나지요. 운동이 끝나고 샤워하고 맥주 한잔 들이키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함께 여행갔다온 느낌이 들 만큼 친근해집니다. 라운드를 하다 보면 같이 운동한 사람들의 속성도 다 나오는 게 골프 아닌가요."

선생님의 인생에서 만화는 어떤 것인지요.

"만화는 제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즐겼던 야구, 테니스, 골프를 모두 만화로 옮겼지요. 그러니 만화를 떼놓고 제 인생을 얘기할 수 없는 거죠. 만화를 그리면서 한때 '백지공포증'이 있었습니다. 백지 상태의 원고를 스토리가 담긴 작품으로 메꿀 생각을 하면 머리가 하얘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 달만 그리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작품 구상이 떠올라 그런 '백지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었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보다 건강하게 사는 게 목표예요. 과거 골프를 한창 즐길 때는 1주일에 한두 번씩 필드에 나갔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스윙을 하면 목이 당기고 머리도 아프기 때문입니다. 만화가가 활동하는 무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기회가 주어지면 인터넷에서도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현재 그림 작업을 모두 컴퓨터로 하고 있는데, 최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과 협업을 통해 야구 이모티콘을 제작했습니다. 야구 이모티콘은 각 구단의 특징을 살린 캐릭터와 톡톡 튀는 메시지의 조합이 특징입니다."

<자료 : 문화일보(인터뷰=김도연 문화부차장)>


   
작가소개 / 주요작품 / 캐릭터
sp2490@columbia.edu
이상무 화실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 308 문원빌딩 401호 /
COPYRIGHT© 1999~2017 dokkotak.com, ALL RIGHTS RESERVED